![]() | 일간 이슬아 수필집 - ![]() 이슬아 지음/헤엄 |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화살기도를 해. 사주 보러 온 손님들 마주하기 전에 나도 화살기도를 올리거든. 내 어리석음으로부터 나를 지켜달라고. (명리학자가 이슬아에게) p.14나처럼 학자금 융자가 많았지만 나보다 훨씬 영리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그것을 갚아낸 이슬아의 수필이다. 인생의 굴곡과 결핍 속에서도 따뜻함과 현명함을 내재한 문장이 많다. 젊은 작가들의 글에서 나보다 깊은 사색의 흔적을 발견할 때 느끼는 놀라움과 당혹감, 이슬아의 글은 그런 감정을 많이 불러일으킨다. 10여년 전의 내 멍청한 포스팅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아, 이래서 내 옛날 포스팅을 다 지웠어야 했는데. 그러나 몇 년 후의 나는 또 지금의 내 글을 부끄러워할 것이므로 그것도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인생은 쪽팔림의 연속이니까. 이렇게 의미없이 지나간 주말의 오후, 술 대신 요거트 스무디를 마셨다는 것만으로 보람을 느껴보자.
모든 연인은 서로의 광기를 일면 참아주고 있어. (복희가 이슬아에게) p.89
허영과 광기를 맘껏 드러내도 되는 상대가 부모인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런 나를 받아주는 사람이 세상에 둘이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p.125
울음에 있어서 대부분의 남자가 무능한 것 같았다. 울 수 있는 능력을 잃지만 않아도 남자들이 그렇게까지 멍청해지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물론 고작 그 이유가 다일 리는 없다. p.202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아요. 어제 산부인과에서 루프 시술을 받았거든요.
잉?루우프?니가루프시술을했다고?
네. 확실히 피임하고 싶어서요. (이슬아가 외숙모에게) p.205
자신이 과장꾼이라는 걸 계속 티 내는 자의 과장은 오히려 진실을 보여준다. 대놓고 휘청휘청 이리저리 신나게 왜곡하는 입담 뒤에 어쩐지 사실이 가지런히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p.237
'생각해보니 내가 헛소리를 했어. 너를 걱정하는 건 항상 영광이야.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널 걱정할 힘은 남겨둘게. 잘자.'
그러니까 나는 양과 친구가 되고서 어떤 간극을 자주 목격하고 있다. 진심과 입담 사이의 간극. 과장과 축소 사이의 간극. 왜곡과 참트루 사이의 간극. 경솔과 신중 사이의 간극. 무심과 다정 사이의 간극. 그 사이를 예측 불가하게 넘나드는 양이 어느 순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한 문장을 완성할 때가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듣는 게 종종 황홀해서 걔를 나무라면서도 만난다. 걔가 얼마나 가짜로 경솔한지 알아서 더욱 마음껏 나무란다. p.241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은 택시 안에서 한낮의 라디오방송이 흘러나왔다. 아주 기구하고 불행한 사연이라 해도 '그러니까 우리 모두 힘내자구요~' 하는 식으로 끝이 났다. 내 엄마 복희랑 나는 그런 멘트가 불행을 견디는 데에 얼마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지 이야기했다. 긍정이라는 말도 아까웠다. 우리가 아는 긍정성은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한낮의 라디오방송 톤은 언제나 이토록 한결 같을까. 가볍고 흔하고 진부한 상투어들에 위로받는 이들이 세상에는 아주 많을지도 몰랐다. p.272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했는데, 그건 내가 실외노동자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모부 복희와 웅이는 여름을 두려워했다. 땡볕 아래서 많은 노동을 하다가 몸이 상한 날이 많았다. p.393
증언자 없이 살기엔 초등학교는 특히 더 가혹한 곳이었던 것 같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비난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힘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크지 않은 교실에서도 의심하고 의심받는 사건들이 자주 일어났다. (...) 힘이 센 아이들은 의심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정확한 증거를 가졌거나 혹은 증거 없이도 맞장구 쳐줄 친구들을 가진 경우였다. p.489
요즘에는 어쩐지 질문을 아끼게 된다. 어떤 대답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아주 많은 양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중 어떤 것은 너무 슬프거나 아프거나 안타까워서 듣는 이에게 자동으로 책임이 부여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p.4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