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두 도시 이야기 by 명품추리닝

두 도시 이야기 - 10점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p.13
나이가 들수록 고전이 가지는 깊이와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시간의 세례를 받은 문학의 정수가 아니던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찰스 디킨스의 역사 인식과 인간에 대한 통찰에 깊은 감명을 느끼며 페이지를 넘겼다, 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사실 전동석이 출연했던 (그러나 나는 보지 못한) 뮤지컬 원작소설을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해 빌린 것뿐이다. 덕질의 연장선상에서 읽는 고전이겠다. 

초반에 젊고 아름다운 연인(찰스 다네이, 루시 마네트)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가 싶더니, 곧 시민혁명의 주인공들이 우매한 군중심리로 술집 여주인에게 이용당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프랑스 귀족인 숙부가 저지른 죄와 이 우매한 군중들 때문에 찰스 다네이는 결국 처형당할 운명에 처하는데, 다네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술집 여주인(드파르주 부인)의 기개가 예사롭지 않다. 그녀가 뜨개질을 이용해 암호를 기록하고, 특유의 카리스마로 군중을 휘어잡는 모습에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드파르주 부인으로 보일 정도였다. (뮤지컬에서는 신영숙이 이 캐릭터를 맡았으니 충분히 여장부다운 존재감이 넘쳤을 것이다.)
그가 들어갔을 때 아내 드파르주 부인은 계산대 뒤에 앉아 있었다. 남편과 비슷한 연배인 당당한 분위기의 부인으로, 무엇이든 허투루 볼 것 같지 않은 매서운 눈매에 큰 손에는 반지를 여러 개 끼고, 차분한 표정에 튼튼한 골격, 웬만한 일에는 평정을 잃지 않는 태도를 지녔다. 게다가 어떤 일을 주관하고 계획을 세울 때 작은 실수도 없이 해낼 것 같은 치밀한 면도 있었다. p.53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의 맛을 본 군중들의 광기는 계속 드파르주 부인의 뜻대로 움직인다.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그 신자들을 보는 것 같다. 영국 작가의 눈에 비친 프랑스 혁명의 모습이겠다. 결국, 다네이를 구해내는 것은 루시를 짝사랑하던 술주정뱅이 건달 '시드니 카턴'이다. 무려 자신이 대신 처형당하는 희생을 감당하면서. 이 책의 표지에 나온 잘생긴 남자의 그림이 다네이(전동석)가 아니라 카턴(류정한)이라는 것도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다. 귀족들(다네이, 마네트 박사 등)은 머리를 쓰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한 것은 자신의 몸을 희생한 평민들(카턴, 미스 프로스)이라는 것은 이 소설의 진부하고도 소중한 교훈일까. 다시 국내에서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가 공연되면, 시드니 카턴을 연기하는 전동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