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전동석 10주년 첫 번째 선물 by 명품추리닝

오전에 피아노 연습을 하고 3시에 일찍 엄마와 콘서트장으로 출발, 블루스퀘어 스테이지B에서 통단호박 스프와 치즈오븐 리조또를 먹었다. 전동석 콘서트의 금요일 리뷰에서 러닝타임이 3시간을 넘는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미리 뱃속을 든든하게 채운 것. 두 메뉴가 모두 너무 맛있어서 콘서트 전부터 기분이 좋았다. 가격을 생각하면 자주 오진 못하겠으나 특별한 날 분위기 잡기는 괜찮을 식당이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뮤지컬 전용극장과는 달리 모든 악기가 무대 위에 세팅되어서 제법 콘서트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좌측의 브라스와 스트링, 우측의 밴드가 일반적인 대극장 뮤지컬 규모여서 아이마켓홀 내부를 밀도 높은 사운드로 가득 채웠는데, 이 정도 규모의 반주와 전동석의 성량이라면 인터파크홀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객석도 훨씬 편하고 말이지.

1부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의 시대(그랭구아르)

로미오 & 줄리엣- 난 두려워(로미오)

모차르트- 나는 나는 음악(모차르트)

엘리자벳-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토드)

노트르담 드 파리-벨(with 이지훈, 민우혁, 손준호)

헤드윅- Tell me down(헤드윅)

드라큘라- Loving you keeps me alive(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후회(빅터)



1부에서 가장 기대했던 곡은 '대성당의 시대'. 예상대로 전동석의 매력적인 저음과 폭발적인 고음이 조화를 잘 이루어 풍성한 음색을 느낄 수 있었다. 맨발의 모차르트는 정말 행복해보였고, 토드의 마지막 춤은 오늘의 의상 컨셉과 가장 잘 맞아떨어졌다. 판타스틱 팀과 부르는 '벨'은 원곡과 달리 3명의 캐릭터를 4명의 배우가 각각 나누어 불렀는데, 공연 자체는 좋았으나 3명이 원곡대로 노래를 부르고 전동석이 에스메랄다를 연기하는 게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목도 아끼고 좋잖아.



판타스틱 팀과의 토크에서는 민우혁의 발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킬 앤 하이드 연습 때, 전동석은 자신과 달리 이미 전날에 모든 대본을 외워서 연습실에서는 디테일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는 것. 순둥순둥 왕자님 외모와는 달리 독한 배우라는 이야기였는데, 어쨌든 연습벌레는 누구든 존경할 수밖에 없다. 자, 나도 연습해야지. 그런데 251 Licks 연습은 왜 끝이 없는 거냐.



또 다른 에피소드. 전동석은 새벽에 동네 운동장에 가서 헤드윅 동선을 짜고 안무 연습을 했단다. 대형 거울이 있는 24시간 연습실도 많을 텐데 취향이 좀 독특하다 싶었다. 나는 집에 피아노가 없어서 연습실에 갈 수밖에 없는데, 뮤지컬 스타가 이런 궁상맞은 이유로 운동장 연습을 하진 않았을 거 아닌가. 어쨌든 밖에서 남 눈치보며 연습하는 상황이 내 경험과 닮아있어서 묘하게 다가왔다. 



1부 마지막에 등장한 ‘후회’는 1부에서 전동석이 가장 안정적으로 잘 부른 곡이 아닐까 싶다. 2018년의 전무후무한 폭염 속에서 내가 건진 게 있다면 2박 3일의 인생 첫 호텔 바캉스와 <프랑켄슈타인>의 전동석이었다. 새삼 작년의 동빅이 떠오르며 엄마와 이모를 공연장에 데려간 나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였다.


2부 

윤전일 발레리노 공연

슈베르트 예술가곡 <마왕>

베르테르- 발길을 뗄수 없으면(베르테르)

취중진담

라젠카 save us

모차르트- 황금별(김소현 solo)

지킬 앤 하이드- Take me as i am(with 김소현)

맨오브라만차- The Impossible dream(돈키호테)

이집트의 왕자 ost - 내 길 더 잘 아시니 



2부의 첫 무대에서는 윤전일 발레리노가 '전동석의 그림자'를 주제로 한 모던발레를 선보였다. 우아하지만 어딘가 슬프고 우울했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다고 했던가. 설마 나처럼 우울증을 앓았던 건 아니겠지. 약 먹고 운동하면 낫지만 꽤 힘든 병이니까. 어쨌든 2부에서 가장 좋았던 곡은 임파서블드림, 전동석이 40살에 하고픈 작품이라 했다. 목표가 분명해서 좋다. 그때도 엄마와 손을 잡고 뮤지컬을 보러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2부 마지막 곡인 ccm은 전동석의 크리스찬 커밍아웃(?) 곡이었다. 아... 초등학교 시절 교회 반주까지 했던 어릴적 나에게는 왜 저런 교회 오빠가 없었던 걸까. 내 종교적 신념이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20여년간 독실한 명품추리닝교 신자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전동석이 아무리 감미로운 목소리로 전도를 해도 도저히 개종이 안 된다. (일요일 아침 이불 밖은 위험해요.) 아무튼 귀엽지 않나, 술 취해서 버닝썬 대신 김소현 집에 가서 계란말이 얻어먹는 교회 오빠잖아. 




앵콜곡

팬텀- 이렇게 그대 그의 품안에

엘리자벳- 그림자는 길어지고(with 손준호)

드라큘라- Fresh blood

지킬 앤 하이드- 지금 이 순간 



금요일 리뷰를 읽으며 가장 기대하던 곡 중 하나가 드라큘라 Fresh blood 였는데, 1부의 러빙유에 이어 앵콜로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다. 전동석은 내년에 드라큘라 타이틀롤을 맡은듯. 프랑켄슈타인, 지킬 앤 하이드, 헤드윅에 이어 계속 반기독교적인 캐릭터를 연기할테지만, 이번에도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 별로 걱정이 안 된다. 걱정되는 건 내 지갑이지. 내년에는 엄마와 북유럽 여행을 가서 뮤지컬에 지출할 돈이 남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드라큘라 국내외 넘버를 찾아 듣는 것만으로 귀가 즐겁다. 5시간에 걸쳐 버스를 타고 서울을 떠나 집에 도착, 운동을 하고 씻으니 밤이 깊어졌다. Fresh blood를 좀 더 듣다가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