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브레인 오디세이 by 명품추리닝

브레인 오디세이 - 8점
알렉산더 뢰슬러.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조경수 옮김/돌베개

미국의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관한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어떤 음악 교수가 어느 날 문득 자기가 학생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투나 몸가짐만으로만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 증세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 물체를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음악 교수가 처음 방문했을 때 색스 박사는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발을 신발로 착각하고 작별할 때 모자를 집는 대신에 아내의 머리를 잡자, 색스 박사는 음악 교수가 심한 물체 인식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인은 뇌종양으로 추측되었다. 종양은 안면 인식을 전문으로 하는 시각 피질 부분으로부터 서서히 퍼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음악 선생의 지능과 음악성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음악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p.29

뇌 내 모든 과정에서 그렇듯이 뇌에서 움직임을 유발하는 영역들은 다른 영역들과 밀접하게 열결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기능적 영상화(fMRI)를 이용한 실험들 덕분에,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동작을 상상만 해도 이 동작을 관할하는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이 그 동작을 한다고 상상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서 심리 훈련 혹은 '모의 훈련'은 훈련 효과가 있다. 피아니스트는 연주할 작품과 손가락 움직임을 정확히 상상해서도 연습할 수 있다.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는 우편 마차를 타고 먼 길을 갈 때면 나무 건반을 가지고 갔다. 높이뛰기 선수가 골프 선수도 이 방법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물론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축구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플레이 스테이션으로 피파 2012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는 남보다 우수한 축구 선수가 될 수 없다. 많은 축구 팬들이 '나라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할지라도 말이다. p.56~57

뇌가 행복감에 대해 이토록 인색하게 굴다니 어쩐지 유감스럽다, 안 그런가? 다른 한편으로, 만약 그토록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즉각 재미를 주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생존에 중요한 일을 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기가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서 활동에 나서는 것은 전두엽, 즉 이마 바로 뒤에 있는 뇌 피질 영역이다. 전두엽은 특정한 일과 행위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행동을 계획하고 제어하는 데 중요하다. 공부하거나 숙제를 하거나 악기 연습을 하거나 출근하는 것은 별로 즐거울 게 없지만, 우리는 그런 일이 장기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p.83

언어는 진화 과정에서 한 종種 내에서 발달한다. 동물들은 그들의 서식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도로 서로 소통한다. 개는 예외다. 개는 1만 년 넘게 인간과 가까이 살고 있고 갈수록 인간에 동화하고 있다. 개는 언어 표현을 몸짓, 냄새, 그림과 연결할 수 있다. p.102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갖다 붙이는 이유가 진정한 이유이기도 할까? 우리는 자기 행동의 진정한 이유를 인식할 수나 있는가? p.186

피험자들의 과제는 우선 사진에 찍힌 두 사람 중에 더 매력적인 여성을 고르는 것이었다. 선택한 후에 왜 자기가 고른 사람을 더 매력적이라고 여기는지 이유를 대야 했다. 그런데 피험자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실험 참가자가 자신이 내린 결정을 알린 후에 학자들이 때로는 카드를 몰래 바꿔치기했다는 것이다. 이제 피험자는 애당초 그가 고르지도 않은 사람을 왜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대야 했다. (...) 흥미롭게도 선택의 대상이 된 두 사람이 얼마나 닮았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실험 참가자들이 대부분 속임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은 두 사진을 혼동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p.186~187

우리는 우리의 결정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갖다 붙이는 데 고수임이 분명하다. 다소 교활하다고 인정하지 않은 수 없는 스웨덴 연구팀의 실험은 우리가 이런 면에서 놀랄 정도로 유연하며 자신의 결정과 행위에 대한 이유를 너무나 기꺼이 추후에 생각해 낸다는 사실을 아주 똑똑히 알려 준다. 보아하니 우리 뇌는 늘 우리 지각의 모순들을 해소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느라 때로는 스스로를 속이는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p.187

미국 어느 학교의 교사가 어느 날부터 그 자신으로서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이들에게 성적으로 끌리게 된 것이다. (...) 이 교사는 자신의 성향을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그 자신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 감옥에 들어가기 전날, 교사는 심한 두통에 시달려 병원에 갔다. 교사는 두통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집주인 여자를 성폭행할까 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 의사들은 MRI로 교사의 뇌 사진을 찍었다. 촬영 결과, 두통의 원인은 물론 행동 변화의 원인까지 밝혀졌다. 오른쪽 전두엽에 달갈만 한 종양이 있었던 것이다. 전두엽은 충동을 통제하고 사회 행동, 즉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하는 행동을 제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p.190

소아 성애증 환자였던 미국 교사와 같은 경우에는 많은 나라에서 판례가 아주 분명하게 나와 있다. 뇌종양과 범죄 행동 간에 명백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는 책임 무능력자로 선언된다. 그러면 징역형에 처해지지 않고 의사의 치료를 받게 된다. 치료는 대개 폐쇄 시설에서, 즉 자유가 박탈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책임 능력이 있건 없건 사회는 어떤 경우에도 범죄 재발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p.192
<브레인 오디세이>의 저자 '알렉산더 뢰슬러'와 '필리프 슈테르처'는 모두 신경정신과 의사이면서 오랜 기간 악기 연주자(콘트라베이스, 플루트)로 활동했다. 덕분에 뇌과학과 관련된 예시에는 음악가와 연주자들의 에피소드가 흥미롭게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뇌과학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를, 그리고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선한 동기와 합리적인 이유로 포장하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전두엽은 거의 절대적인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뇌종양으로 인해 물체인식 장애가 생긴 음악 교수는 적지 않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평생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전두엽에 발병한 미국 교사는 소아성애자가 되어 감옥에 갔다. 그래서 혹시라도 내게 종양이 생긴다면 전두엽에는 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건강하게 나이드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아래는 [악기 연주가 우리 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TED 강의인데, 피아노를 연습하기 싫어질 때 보면 조금 도움이 된다. 올해 안에 Upper Structure Triad를 배워 익숙하게 사용하려면 나의 태생적인 게으름을 이겨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