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 by 명품추리닝

1994년의 시대상황을 (감독이 가장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중학생 은희의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 분명 시대적으로는 나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나는 대치동의 고층 아파트에 살아본 적도, 콜라텍에 가본 적도, 삐삐라는 물건을 가져본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중산층 은희보다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게는 [엄마]를 불렀을 때 항상 나를 바라봐주는 양육자가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내게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은희가 절박하게 부르는 그 '엄마'가 자신의 딸을 외면하는 부분이었다.

은희의 모성결핍을 채워주는 인물로 단짝친구 지숙, 남자친구 지완, X후배 유리 등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나약함과 변덕스러움은 은희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고, 그나마 성숙한 유대관계를 가르쳐준 한문학원 강사 영지와의 만남 역시 찰나와 같이 지나가 은희의 공허감을 깊게 만든다. 이러한 일련의 서사가 월드컵과 김일성 사망, 성수대교 붕괴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평행을 이루며 지나가고 있었다. 

은희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조금 일찍 가족과 친구에게서 확인하지만, 결국 이 불완전한 사람들과 다시 유대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또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은 그냥 가슴 속에 묻어두고 그리워한다. 그것이 보편적인 인생이라고,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