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동안 간병으로 고생하셨던 엄마와 이모는 지난 겨울 함께 패키지로 유럽여행을 다녀오셨다. 직장에서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는 중에 엄마가 카톡으로 보내오는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사진이 얼마나 여유롭고 재미나게 느껴지던지. 역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돈이 있어야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모양이라고, 나는 작은 월세방 구석에 앉아 나직하게 투덜거렸다.
3년전 미국인 며느리를 들인 엄마는 그때부터 EBS 영어회화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했고, 해외여행을 가면 종종 그동안 배운 영어를 구사하신다. 이번에 엄마가 탄 비행기에는 20명 남짓한 패키지 여행객들이 함께 있었는데, 어떤 외국인 남자가 엄마 뒤에 있던 한국인 커플에게 [그 자리는 내 자리이다]라며 자신의 티켓을 보여주었고, 커플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상황이 펼쳐졌다. 당황해하는 중장년층 관광객들 사이에서 엄마가 나섰다. 그 외국인에게 [이들은 일행이니 당신 자리와 좀 바꿔주면 안되겠느냐]고 영어로 부탁한 것. 외국인이 흔쾌히 자리를 바꿔주자 뒷자리의 커플은 연신 엄마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는데, 알고 보니 그 커플이 하필 불륜 사이였단다. 뭐, 어쩌겠는가. 당사자들은 절실한 로맨스의 주인공일 텐데.
어쨌든 엄마는 이번 여행으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한층 높아졌다고 한다. 올해는 오라버니의 미국 출장에도 따라가 더더욱 수준 높은 영어회화를 구사하겠노라는 포부도 다진 상태. 나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영어회화를 시작하긴 했는데, 게으른 몸이 따라주질 않고 있다. 렛잇고, 렛잇고, 아이 돈 케어. 오늘은 10분이라도 말하기를 해보고 자야지.



덧글
게다가 패키지 여행객들 중에서 엄마와 이모가 가장 연장자였는데 말이에요.
우리도 할 수 있을 거예요, 디즈니 애니메이션 같이 봅시다~
진정한 멋!
그나저나 나는 영어회화 열공 언제하나ㅠㅠ...
저도 본받아야 할 텐데, 제 언어능력은 엄마 뱃속에 두고 나왔나봐요.
백산 님은 원래 해박하시니 언어도 잘 하실 듯해요. 돈 워리!
외국인 남친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