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by 명품추리닝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 10점
조지 오웰 지음, 김영진 엮음/한빛비즈

특히 그가 경계한 것은 전쟁 중에 불거지곤 하는 무비판적 애국심 선동이었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조국에 이로운 일이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습관은 애국주의가 아니라고 오웰은 단언했다. 그건 국수주의이며 애국심과 헷갈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p.26~27

이런 셈법이 어리석은 이유는 누군가를 굶김으로써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럽이 궁극적으로 어떤 정치적 합의를 하든지 간에 수년간 굶주림과 고통, 약탈, 무관심을 겪은 다음이다. 따라서 상황은 더 열악할 수밖에 없다. 주베르 경은 미래에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독일 아이들에게 식량을 주느니 우리 영국 아이들이 그 식량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게 '가장 현실적인' 견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1918년 당시 현실파 인물들의 주장은 휴전 후 독일을 봉쇄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독일에 봉쇄선을 세웠다. 그리고 1940년, 우리에게 폭탄을 떨어뜨린 독일 청년들은 그때 우리가 굶긴 그 독일 아이들이었다. p.74

BBC를 떠나고 얼마 후 작성한 글에서 오웰은 역사로 기록되는 사실이 거짓투성이라고 믿는 것보다 더욱 신경 쓰이는 건 '진실이 역사로 기록될 수 있다'는 믿음 자체를 우리 사회가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머리 위에 떨어지는 폭탄보다 권력자가 '2+2는 5다'라고 말했을 때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미래가 더 두렵다는 얘기였다. 오웰은 언제나 그랬듯 진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p.83

정부 정책을 대중에게 알리고 설명하는 작업은 지금의 노동당 정부에게 쉬운 과제가 아니다. 뿌리 깊은 곳까지 정부에 적대적인 언론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p.107

"전쟁이란 어느 악을 선택할 것이냐는 물음이다. 나는 조국 영국의 제국주의를 겪었고, 그 폐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전쟁 상대가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본의 제국주의라면 '차악'으로 영국을 지지하겠다." p.130

반대로 전쟁 중에 추천할 만한 오락거리는 게임, 스포츠, 음악, 라디오, 춤, 문학 같은 예술 분야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오락 행위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얻는 대신 자기 자신이 오락성을 만들어내는 것들이다. p.137

내가 반대하는 건 위선이다. 무력은 수단일 뿐이라고 정당화하면서 특정 무력 수단에만 반대하고 불평하는 위선, 전쟁을 비난하면서 실제로는 전쟁을 유도하는 사회 구조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그런 위선 말이다. p.161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누군가를 '독일놈Huns'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그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리는 게 덜 해로운 행위다. 그 누구도 일부러 사람을 죽이거나 상처입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죽음 그 자체가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데 나는 공감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100년도 채 안 되어 자연사로 죽지 않나. 진정한 악은 상대가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행위다. 전쟁이 문명의 본질을 파괴한다고 할 때 단순히 물리적 파괴를 말하는 게 아니다(따지고 보면 전쟁은 전세계적으로 생산능력을 끌어올리는 순이익을 낳기도 한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 때문도 아니다. 전쟁은 증오와 거짓을 확산시킴으로써 문명의 본질을 파괴한다. p.181

모든 국민은 자기 한 몸 누일 크기의 집을 갖는 게 바람직하며, 모든 농부는 자기가 경작할 수 있는 크기의 땅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 반면 도시 지역의 지주들은 그 어떤 기능도 하지 않으므로 아무 존재 이유가 없다. 지주라는 존재는 돌려주는 것 없이 일방적으로 대중을 착취할 방법만 찾아낸 사람이다. 이들은 집값을 올리는 원인이자 도시 구역 개선의 걸림돌이고, 아이들의 공원 출입을 막는 주범이다. 임대료 수금을 빼고 이들이 하는 일은 그게 전부다. p.229

설거지 한 무더기를 처리할 때마다 나는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놀라곤 한다. 인간은 바닷속을 여행하고 구름 위를 비행할 수 있으면서도 설거지처럼 시간을 잡아먹는 일상적 골칫거리 하나 없애지 못하고 있다. (...) 집안일을 개선하는 속도와 비슷한 속도로 전쟁을 일으키는 방법을 연구했다면 우리 인간은 이제야 막 화약이 뭔지 발견하는 수준 아니었을까. p.233~234

그렇다면 언론을 통한 의사표현의 창구가 모조리 관료들의 지배하에 놓인다는 뜻일까? 대중이 자신의 운명에 무관심하다면 그런 상황이 쉽게 닥칠 것이다. 신문, 잡지, 책, 영화, 라디오, 음악, 연극이 모조리 한 덩어리로 쓸어 담겨 '예술부'라는 거대 정부 조직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사실 조직의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반가운 전망은 아니다. 사람들이 그 위험성을 일찍 깨닫는다면 이런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p.274
100여년 전 태어났던 영국인 저널리스트의 글에서 놀랍게도 현재의 남북문제, 정치인의 위선, 언론의 부패, 부동산 투기, 가사노동, 표현의 자유, 문화계 블랙리스트까지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가, 조지 오웰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어쩐지 고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가 떠올라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두 지식인 모두 비범한 통찰력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글을 썼지만, 한쪽은 존경받는 저널리스트로 가족들의 품에서, 다른 한쪽은 교수직 파면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홀로 생을 마감했으니. 부쩍 서늘해진 가을바람에 몸이 떨리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