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쉴레>와 <훈데르트 바서> by 명품추리닝

2월의 어느날 아침, 광화문에서 조조로 예매한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에 지각을 하여 전반부 20분을 날려먹고 말았다. 인터넷 예상 소요시간에 맞춰 탑승한 버스가 러쉬아워의 도로에서 20분을 더 허비했으니, 앞으로는 종로나 강남에 갈 때엔 버스 대신 지하철을 이용하리라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뒤늦게 다짐했다. 평소라면 반가워했을 광화문 씨네큐브의 '광고 없는 상영관'도 괜히 원망스러워진 날이었다. 

영화에는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쉴레에게 영감을 준 뮤즈 네 명이 차례로 등장한다. 사랑과 욕망, 질투와 절망은 기묘한 선과 색채에 녹아 쉴레의 화폭에 담겨 그의 개인전을 성공으로 이끈다. 그러나 게르티, 모아, 발리, 에디트에게서 각각 순결, 정열, 헌신, 안정을 찾은 에곤 쉴레는 그래서 각각의 연애에서 온전히 행복할 수가 없었으리라. 

평생을 순수하고 가난하게 산 반 고흐에 비하면 에곤 쉴레는 훨씬 영악하고 이기적이다. 덕분에 그는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하여 작품활동을 이어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은 그가 가난할 때 발리와 함께한 생활 속에서 탄생되었다. 에곤 쉴레의 대표작 <죽음과 소녀>에는 그러한 발리의 헌신과 고통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먹먹한 여운을 안고 광화문 거리를 걸었다. 그러나 곧 점심으로 일본식 돈가스를 먹고나니 쉴레로부터 드리운 우울감은 금세 멀리 달아났다. 이제 또 다른 20세기 오스트리아의 화가 <훈데르트 바서>를 만날 차례다.   

개인의 내면 속으로 치밀하게 파고들어간 '에곤 쉴레'와 달리 '훈데르트 바서'는 대규모의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집중했다. 자연과 공생이 가능한 건축 디자인, 식물을 이용한 수도정화 시스템, 개성있는 환경 포스터가 그의 자연주의적인 철학을 드러내고 있다. 훈데르트 바서가 곡선으로 디자인한 파스텔톤의 건축물은 후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단다.     

오전에 관람한 <에곤 쉴레>의 영향이었을까. 훈데르트 바서의 <노란 집들-함께 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픕니다(1966)>에도 진한 슬픔이 묻어난다. 노란 집 창문에 그려진 물방울들은 마치 자존심 강한 여자가 몰래 흘린 눈물 같다.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에서 더 큰 아픔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