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영험한 기도 by 명품추리닝

90세를 훌쩍 넘긴 외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정정하셔서 요새도 성경을 필사하신단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할머니는 특히 손주들의 영달을 위해 많은 기도를 올리셨는데, 그래서 시험 합격이나 취업 성공을 한 손주들은 할머니의 영험한 기도에 항상 감사인사를 드리곤 했다. 신앙생활에 별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할머니 앞에서는 제법 진지한 어조로 [할머니의 기도 덕분에 이번 시험에 합격했어요!]라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으니까. 물론, 할머니가 불교 신자였다면 [할머니의 불공 덕분에 이번 시험에 합격했어요!]라는 센스를 발휘했겠지.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할머니 댁에서 신기한 물건을 발견했다.   

감사패: 위 교인은 30년간 우리 교회에서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여 타인의 모범이 되었으므로 이 감사패를 수여함.

할머니가 다니시는 교회에서는 놀랍게도 이러한 감사패를 제작하여 교인들에게 수여하고 있었다. 무려 30년이나 십일조를 헌금하여야 받을 수 있는 귀중한 감사패이니, 집사도 권사도 아닌 '원로권사'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이 드높아졌을 것이다. 주말 예배는 물론 평일 새벽기도 때에도 교회의 운전기사가 매일 원로권사님을 모셔가고, 교회의 중요한 행사 때마다 원로권사님이 대표 기도를 하시고, 예배당 옆의 작은 휴게실에는 원로권사님을 위한 침대도 마련되어 있다. 가족들이 그동안 할머니께 드린 용돈도 대부분 이 교회의 헌금으로 쓰였으리라. 

여느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내 할머니도 자식자랑, 손주자랑을 좋아하신다. [내가 100일 동안 새벽기도를 했더니 우리 손주가 시험에 합격했어요.]라 말하는 순간이 얼마나 기쁘시겠는가. 그러나 할머니도 어느 순간부터 교회에서 집안의 경사를 함부로 말씀하실 수 없게 되었단다. [그렇게 기쁜 일이라면 감사 헌금을 하셔야지요.]라는 목사님의 대답을 들은 후였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할머니의 십일조를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신다. 교회에서 받는 융숭한 대접 덕분에 할머니가 큰 병 없이 장수하시는 거라고, 만약 할머니가 원로권사로서의 자부심도 갖지 못했다면 슬픔과 화가 쌓여 십일조보다 많은 병원비가 나갔을 거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어서 나는 이번 설에도 할머니께 기쁜 마음으로 용돈을 드렸다.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실 수 없지만, 다행히 목사님이 신방을 오시니 십일조는 여전히 가능하지 않은가. 앞으로 할머니가 100세 기념 감사헌금을 하실 때까지 열심히 용돈을 드려야겠다.    

덧글

  • 2017/01/30 21:0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1/30 22:5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1/31 08:5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1/31 23:2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백산 2017/02/03 20:26 #

    대단하신 외할머님이십니다.
    90세를 훌쩍 넘긴 연세에도 성경 필사하시고 100일 새벽기도까지 하시는 열정과 깊은 신앙심이 놀랄울 따름입니다.

    외할머니께 기쁜 마음으로 용돈을 드리는 명품추리링님의 예쁜 마음이 빛납니다.
    훈훈한 이야기에 제 마음까지 훈훈해 졌습니다. 감사 ^___^~**
  • 명품추리닝 2017/02/04 01:35 #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새벽기도를 나가셨죠.
    연세에 비해 정정하신 게 성경필사 덕분인 듯해요.
    어쩌면 제가 다이어리 쓰는 것도 할머니를 닮은 건지도...

    밝고 긍정적인 부분만 부각하여 칭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할머니 용돈을 잘 드릴 스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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