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있는 남자에게 고백하는 일 by 명품추리닝

지인의 일화이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과거에 애인있는 남자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한 그녀의 도입부는 매우 솔깃했다. 호감있는 남자와 밥을 먹고 영화를 보며 고백받을 타이밍을 기다리던 그녀는 곧 남자에게 다른 연인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실의에 빠졌다. 인기가 많은 남자였는지 그와 가벼운 데이트를 한 여성들이 더 있었고, 그중 한 명이 남자와 정식 연인이 된 것. 그러나 그에 대한 마음이 쉽게 식지 않았던 그녀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남자에게 고백했다. '지금 사귀는 그녀 말고 나와 사귀는 게 어때요?'라고.

꽤나 놀라운 이야기였다. 내가 관찰한 그녀는 대외적인 평판과 예의를 중시하여 애인있는 남자에게 쉽게 고백하지 못할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고백도 못한 채 그와 어정쩡한 친구로 남아 후회하느니 깨끗이 차이고 마음을 접는 게 낫다며 당시의 선택을 긍정하였다.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가 발칙하면서도 참 멋졌다.

그렇지만 반전은 그 다음부터였다. 링컨이 '그 인간의 본성을 알고 싶거든 손에 권력을 쥐어줘 보라'고 했던가. 그녀의 고백을 받아 감정적으로 우위에 선 남자가 '지금 연인과 헤어질 순 없지만 네가 원한다면 너와는 비밀스럽게 사귀어줄 수 있다'며 양다리를 걸치겠다는 본심을 내보인 것이다. 그 순간 남자에 대한 그녀의 미련이 완전히 정리되었단다. [애인있는 남자에게 고백하는 나쁜  X] 꼬리표를 감수한 선택이 그녀의 마음을 더 단단하고 평화롭게 만들어준 듯했다.

반면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사랑 앞에서도 비겁해진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해 호감있는 사람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질척인다. 그렇게 본심을 숨긴 채 실수인 척 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나아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자신을 좋아해주는 이와 사귀며 낮아진 자존감을 채우는 경우까지 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연애를 진짜 사랑처럼 포장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자기기만이 쌓여야 할까.

여러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누가 누구에게 호감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될 때가 있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이성적인 호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마음이므로 오해의 여지가 많다. 그보다는 스스로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 낫다. 자신이 누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니까. 게다가 인간은 직접 경험 이외에도 독서를 통해 다양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은가.

진부한 말이지만 스스로에게 정직한 사람이 매력적이다. 젊음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이 매력을 갖춘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지므로. 늦었지만 용기있는 지인에게 수줍은 신년인사를 건네야겠다.

덧글

  • 벅벅 2017/01/12 00:12 #

    사귀기 전에 누굴 몇명을 만나던 상관 없지만 한 사람과 관계를 확실시 한 순간부터는 사함이 신중해야하는건데... 왜 다들 저럴까 몰라요
    바람피면 입 못놀리게 입이나 딴짓 못하게 손을 짤라버려야할텐데말이죠
  • blue snow 2017/01/12 00:30 #

    완전 공감해요.짤라야 해요.
  • 명품추리닝 2017/01/12 00:58 #

    저도 저 남자의 대답이 충격이었어요. 천년의 사랑도 식을 것 같아요.
    그에 비해 솔직한 지인의 태도가 참 매력있지요. 본받고 싶어요.
    벅벅 님과 blue snow 님 모두 좋은 한 주 되세요~
  • 토키 2017/01/12 15:28 #

    전 남자지만 저런 남자 혐오스럽네요. 손을 자르는게 아니라 허리 아래를 잘라버려야겠는데요.
  • 명품추리닝 2017/01/12 18:43 #

    동감합니다. 일찍 고백해서 남자의 본모습을 보고 인연을 끊은 게 정말 현명한 처사였어요. 그녀의 용기있는 선택이 참 멋지죠?
  • 토키 2017/01/12 18:45 #

    그러게요 ㅎ 멋진 분을 만날 수 있을거에요 그분도!
  • 액시움 2017/01/12 20:26 #

    현명한 지인이군요.
  • 명품추리닝 2017/01/12 23:02 #

    그쵸? 주변 사람들에게 배울 점이 많아요.^^
  • 이든 2017/01/13 23:47 #

    용기있는 그분의 모습도 매력적이고요
    의도치않게 상대의 본질을 파악하는 질문이 되버렸네요
    이 경우는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거같습니다;
  • 명품추리닝 2017/01/15 13:23 #

    역시 진솔한 사람이 매력있지요.
    상처받을 용기가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인 듯해요.
    운은 내가 어찌할 수 없으니 그 태도만 유지하면 좋겠습니다.
  • Shishioh 2017/01/14 00:33 #

    그남자 곤란하니 여자가 싫어할만할 이야길 골라한걸까요?

    아님 진심으로 비밀로 만나려 했을까요?

    심리가 궁금하네..

    대부분 애인이 있으니 만나줄수 없다 하지만 친구로 지내자 가 나쁜남자의 정석아닌가요;
  • 명품추리닝 2017/01/15 13:31 #

    저도 도입부에선 그 '친구로 지내자' 정도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대놓고 양다리를 걸치겠다니, 스스로의 매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걸까요?

    그나저나 Shishioh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강아지들 잘 기르고 계신지 궁금해요. 사진 많이 올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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