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의 대화 34 어머니의 까칠함 by 명품추리닝

어머니는 대체로 자녀들에게 인자한 태도를 유지하셨기에 어린 시절의 나는 어머니를 내 모든 감정을 다 받아줄 사람으로 여겼다. 덕분에 그때의 나는 어머니 앞에서 대부분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머니에게 온갖 애교와 지랄을 다 떨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린 아이의 감정을 자애롭게 받아주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깨달은 것은 내가 성인이 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였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의무처럼 드리워진 '효도'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내가 어릴 때 한 짓을 생각하면 어머니에게는 효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효도의 기본은 계좌이체이고, 부가적으로 (2016년에는) 척추교정방석, 유자차, 핫팩, 수면목도리, 영어교재 같은 아이템을 선물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문화생활과 맛집 탐방은 올 1~2월에 함께할 예정이다. 그리고 매일 초롬이 이야기를 해야지.

나에게서 묘사되는 어머니는 이렇게 자애로운 인간상이나, 밖에서 활동할 때의 어머니는 또 다른 모습인 것 같아 신기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아름다운 재단에서 운영하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봉사를 할 때에는 매우 까칠하시단다. 기부 물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이곳에서도 백화점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손님들이 흔한데, 여기서 [물건 포장은 셀프입니다], [옷 입어봤으면 다시 잘 걸어놓으세요], [우리는 매뉴얼대로 하는 겁니다, 손님은 지금 갑질하는 거고요]와 같은 찰진 대사를 할 수 있는 백발의 캐셔가 바로 내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종종 접하는 고령의 박사모 회원들에게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설명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그 설명이 꼭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얉은 지식>처럼 명확하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자녀들과의 깊은 유대관계가 어머니의 정치의식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어머니가 읽는 책들의 대부분은 오라버니나 내가 추천한 것들이니까. 아마도 '똑똑하고 정보를 많이 가진 젊은이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태도가 어머니의 의식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을 게다. 

집이 조용하다. 현재 제주도 여행 중이신 어머니의 알라딘 택배를 집에서 뒹굴거리던 내가 받았다. 내일은 부지런히 일어나 조조영화를 보고, 주말에는 어머니와 당첨된 연극을 관람해야겠다.    

덧글

  • 다다 2017/01/04 22:59 #

    안녕하세요? 명품추리닝님.
    어머니께서 계속 배움을 이어가고 계시군요.
    멋지십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얉은 지식은 다음에 한번 읽어볼게요. ^^
  • 명품추리닝 2017/01/05 16:21 #

    반가워요, 다다 님^^
    어머니를 보며 저도 자극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지대넓얕>은 저처럼 지적 게으름이 충만한 사람에게 좋은 책이에요. 다다 님은 금방 읽으실 듯.
  • 백산 2017/01/11 17:50 #

    칼같이 당당한 어머님 태도가 존경스럽습니다.
    어머님께 효도하는 명품추리링님도 아름답습니다.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____^**
  • 명품추리닝 2017/01/11 19:44 #

    저도 당당하게 나이든 어머니가 참 좋아요.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여기저기 같이 다니며 맛난 것 먹어야죠~

    감사합니다.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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