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실 리홀(Rheehall) by 명품추리닝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소풍날처럼 설렜다. 목욕재계하는 마음으로 108배와 샤워를 했더니 엄마표 두부부침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늦은 아침식사 후 텀블러 두 개에 뜨거운 생강레몬차를 담아 외출준비를 하고, 지하철에서 읽을 책도 빠뜨리지 않았다. 엄마의 추천으로 음악감상을 하러 조금 멀리 나가기로 한 날이다.

소풍장소는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성북동 주택가의 골목까지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음악감상실 리홀(Rheehall). 이곳은 6만장 이상의 LP판과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이 갖춰진 고풍스런 카페로, 좋아하는 곡을 신청해 감상할 수도 있다. 내가 이 카페에 들어섰을 때는 스메타나의 교향시 <몰다우>,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등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모르는 곡들은 아이폰 어플 Sound Hound로 찾아보며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감사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이어서 베토벤의 <월광> 3악장이 흘러나오자, 엄마는 [네가 집에서 연습하던 그 시끄러운 피아노곡이 원래는 이렇게 멋진 작품이었구나]하고 감탄하셨다. 칫칫, 이게 다 나를 짧은 손가락의 소유자로 낳아준 엄마 탓이다.

내가 신청한 곡은 빌 에반스의 Autunm Leaves와 Waltz for Debby였는데, 갑자기 이곳의 DJ 언니가 반가운 표정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리홀의 음향시스템을 소개하며, 같은 곡을 두 가지 스피커로 번갈아 들려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곡도 이어서 틀어주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이 해맑은 DJ 언니에게 급격한 호감이 느껴졌다. 다음에 또 가서 만나면 인사해야지~

어둡고 아늑한 카페에서 최상급 오디오로 좋아하는 곡을 감상하는 경험은 무척 근사했다. 앉아있는 몇 시간 동안 '로스코 채플'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숭고미가 전달되는 듯했다. 다만, 피아노가 연주용으로 세팅되지 않아 시연해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다. 재방문하라는 운명의 장난이리라. 다시 만나자, 리홀.

덧글

  • 이요 2016/01/29 11:06 #

    하하, 엄마의 말씀에 기시감이 느껴지네요. 제 동생이 맨날 맨날 연주하던 그 음악을 언젠가 제대로 레코드로 들으며 베토벤 곡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느낌. ㅋㅋㅋ
  • 명품추리닝 2016/01/30 01:48 #

    최상위급 피아니스트가 아닌 이상 연주자라면 모두 저와 같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갈테니, 저는 그냥 제 방식대로 꾸준히 빈둥대며 연습할래요~ 저는 여전히 '남이 치는 쇼팽 에튜드'보다 '제가 치는 학교종이 땡땡땡'이 더 좋으니까요. ㅎㅎㅎ
  • 몽고메리 2016/01/29 13:33 #

    으아... 엄청난 음향시설이로군요...! 시간나면 꼭 들려보고 싶은 곳이네요...!
  • 명품추리닝 2016/01/30 01:43 #

    2014년에 생긴 음악감상실인데, 단연 서울 최고의 감상실로 꼽히더군요.
    제대로 감상하려면 1층 식당 손님들이 대거 입장하는 점심시간은 피하는 게 답이랍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