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반 고흐, 영혼의 편지 by 명품추리닝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10점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예담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그래서 늘 변하게 마련인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 볼 때,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p.16

위험의 한가운데 안전한 곳이 있는 법이지.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니? p.44

그녀에게 특별한 점은 없다. 그저 평범한 여자거든.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숭고하게 보인다. 평범한 여자를 사랑하고, 또 그녀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 해도. p.59

그토록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쉬지 않고 계속 작업해 왔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먹거나 마시는 시간까지도 아낄 정도로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p.77

복권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이 우리 눈에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음식을 사는 데 썼어야 할 돈,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샀을지도 모르는 복권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그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의 고통과 쓸쓸한 노력을 생각해 보렴. p.88

규칙이 먼저 있고 인간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인지, 인간의 행동에서 규칙이 추론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규정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사고력과 의지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p.93

사랑에 빠지면 태양이 더 환하게 비추고 모든 것이 새로운 매력을 갖고 다가온다. 깊은 사랑에 빠지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난 사랑이 명확한 사고를 막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랑할 때 더 분명하게 생각하고 이전보다 더 활동적이 되거든.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물론 그 외양은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지기 전과 후의 모습은 마치 불 꺼진 램프와 타오르고 있는 램프만큼이나 다르다. p.95

우리가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키려 노력해야 하는 까닭은 오직 자신이 느끼는 것을 더 정확하고 심오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이며, 쓸데없는 말은 적을수록 좋다네. 그 밖의 문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지. p.111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 p.125

내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글을 쓰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네 믿음이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 소중한 동생아. 차라리 춤을 배우든지, 장교나 서기 혹은 누구든 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렴. 한 번도 좋고 여러 번도 좋다.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그래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든 하렴. 공부는 사람을 둔하게 만들 뿐이다. 공부하겠다는 말은 듣고 싶지도 않다. p.154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 p.189

다음 시대의 화가들이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너무 짧고, 특히 모든 것에 용감히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p.206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p.208

나는 스스로를 억제하며 매일의 경험과 보잘것없는 작업들이 쌓여 나중에는 저절로 원숙해지며 더 진실하고 완결된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느리고 오랜 작업이 유일한 길이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는 온갖 야망과 경쟁심은 잘못된 길이다. 성공한 만큼이나 많은 그림을 망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277
고독하고 가난한 천재 화가의 편지 모음집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제목 그대로 영혼을 울리는 아우라를 가졌다. 각 챕터의 구성과 사려깊은 제목, 꼼꼼하고 단정한 편집, 적절히 삽입된 고흐의 그림을 통해 화가에 대한 엮은 이(심성림)의 각별한 사랑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컸다. 그래서 완독한 후에는 나 역시 고흐를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환경에서 걸작을 남긴 예술가들도 물론 많지만, 나는 결핍된 상황에서 치열하게 탄생된 예술작품에 특별한 경의와 애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내 경우에, 부르주아들의 지적 유희로써 그려진 그림에 호기심보다는 소외감을 느끼는 때가 많다는 것을 최근의 독서(진중권, <교수대 위의 까치>)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마도 여유롭지 못한 나의 경제적, 문화적 배경이 반영된 취향일 게다. 

지겨운 밥벌이로 감성이 건조해진 시점에 발췌할 부분이 많은 책을 만나서 반가웠다. 특히 공감가는 문장,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든 하라'는 고흐의 조언을 깊이 새긴다. 덕분에 앞으로는 '반 고흐 디자인 문구'를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