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관계와 언어 by 명품추리닝

상대방에게 화를 내거나 힘으로 짓누르거나 마음을 옥죄는 모습을 한국어에서는 매우 다채롭게 묘사한다.
  • 몰아세우다, 닦아세우더, 다그치다, 날 세우다, 언성을 높이다, 고함을 치다, 내지르다, 노발대발하다, 격앙되다, 떵떵거리다, 호통을 치다, 면박을 주다, 쏘아붙이다, 윽박지르다, 속을 후비다, 속을 들쑤셔놓다, 쥐어짜다, 횡포를 부리다, '갑질'(갑을관계에서 갑이 을에게 부리는 횡포)을 하다, 조지다, 들들 볶다, 구박하다, 갈구다, 닦달하다, 쪼다, 내치다, 핏대를 올리다, 밟다, 콧대를 꺾다, 기를 죽이다, 염장 지르다, 가슴에 비수를 꽂다, 가슴을 갈기갈기 찢다…… (그러한 공격이나 억압을 받는 정황을 표현하는 말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시달리다, 휘둘리다, 험한 꼴 당하다, 치여 살다, 주눅 들다, 풀이 죽다, 찌들다) p.108~109
한국 사회와 우리의 일상 곳곳에 갈등의 지점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억눌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과 사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비공식적인 관계에서도 언제나 위계 서열을 엄격하게 따지는 문화에서, 자신의 심경을 정직하게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 대신 약삭빠른 적응이 요구된다. 권력관계에서 약자가 굴복하는 방식도 한국어에서는 매우 다양하게 표현된다.
  • 눈치 보다, 눈칫밥을 먹다, 알아서 하다, 알아서 기다, 잘 보이다, 굽실거리다, 눈도장 찍다, 기죽다, 기를 못 펴다, 끽소리 못하다, 깨갱 하다, 꾸뻑 죽다, 코가 납작해지다, 찌그러지다, 꼬리를 내리다, 숙이고 들어가다, 살살거리다, 빌붙다, 꿀리다, 아양 떨다, 알랑방귀 뀌다, 깍듯하다, 싹싹하다, 애교를 떨다
이런 표현들이 많이 쓰인다는 것은, 강자 앞에서 비굴하게 몸을 숙여야 하는 상황이 많다는 것을 암시한다. 힘 있는 자는 그만큼 지배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아랫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대접하는지를 주시하고 그에 대해 나름의 보상과 처벌을 준다. p.110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평가하는 용어를 보자. 상대방이 마음에 들게 행동하는 경우, 정반대로 눈에 거슬리고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경우('찍히다' '눈 밖에 나다' 등의 말로 묘사되는 상황) 그를 평가하거나 상대의 태도를 묘사하는 형용사나 동사는 다음과 같다.
  • 착하다, 기특하다, 고분고분하다, 반듯하다, 경우가 바르다, 싹싹하다, 깍듯하다
  • 건방지다, 눈치가 없다, 싸가지 없다, 까불다, 깐죽대다, 깝죽대다, 뺀질거리다, 껄렁하다, 되바라지다, 돼먹지 않다, 시건방 떨다, 튀다, 버르장머리 없다, 괘씸하다, 삐딱하다, 기어오르다, 맞먹다, 같지 않다, 개념 없다, 나대다, 설치다 p.110
- 김찬호,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중 -

이 글에 나타난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평가하는 용어들' 중에서도, 나에게는 '눈에 거슬리고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용어들'이 익숙하다. 나는 이상하게 착하다, 기특하다, 고분고분하다는 표현을 듣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내 성격상 앞으로도 이런 표현을 듣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여태까지 내가 월급쟁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