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by 명품추리닝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 10점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바다출판사


부모에게 신세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몸이라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도전을 하든 어차피 어린애 장난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을 하든 학자의 길을 걷든, 자신에 대한 인식 없이 부모의 도움으로 쌓아 올린 것은 언젠가는 허물어지게 되어 있다.
평생을 거기에 몸 받친다 해도 결과는 껍데기뿐, 획기적인 공적은 남길 수 없다.

또 인터넷을 통해 제아무리 그럴싸한 의견을 피력해 봐도 공론이나 다름없다. '빌붙어 사는 자식이 말은 번지르르하군.' 하는 한마디에 된통 깨지고 마는 것이 고작이다. p.41

인간은 왜 영웅과 지배자와 강자를 원하는가.
인간은 모두 지배받고 싶어 하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이 세상을 자신의 판단과 결단과 실천으로 살아가기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 고통을 누군가 대신 없애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초식동물의 흔적인 그런 겁 많은 특질이 모여 불필요한 집단과 조직을 만들고, 사회와 나라를 이룬다. 그리고 그 세계를 반듯하게 관리할 능력이 있을 법한 인물을 추대해서는, 그를 따르고 충성할 것을 맹세함으로써 한순간이나마 안심하려 한다. 추대받은 자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 따위는 없다는 것에 두려워하지만, 있다는 말을 계속 듣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p.61

나라를 통치하는 자들은 국민이 국가의 정체를 단박에 꿰뚫어 볼 만큼 현명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것이 본심이다. 그런가 하면, 너무 어리석어 평범한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인간이어도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이 정체를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어리석음과 노동의 정신에 반하지 않을 만큼의 현명함을 지닌 어중간한 국민을 이상적으로 여긴다. 또 그렇게 되기를 획책하면서 그 방침에 따라 세금을 쓴다. p.71

그들은 여자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가장으로서 위엄을 과시하지만, 자신은 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에만 종사하고 나머지는 전부 아내에게 맡기면 된다는 안이한 정신 상태로, 요령을 부려 가며 너절하게 살아간다.
그런 주제에 천진하고 순수한가 하면 절대 그렇지도 않다. 너저분하게 얽혀 있는 조직과 집단에 적극적으로 발을 들여놓아 그 세계에서 통용되는 비열한 힘을 의문 없이 흡수한다. 탐욕스러운 줄다리기와 서로를 헐뜯고 끌어내리는 일에 열을 올리고, 털끝만큼의 가치도 없는 출세와 명예와 돈 몇 푼을 위해,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자신의 혼을 미련 없이 팔아넘긴다. p.79

인간의 나약함과 교활함에서 신이라는 환상이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쉬이 도와줄 만한, 부탁하면 곧바로 구원해 줄 만한 인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기 힘으로 살아 가겠다고 결심하지 못하는 젊은이가 많다. 이런 자식들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면서 겁쟁이들이 점차 늘어났고, 지금 대부분 젊은이가 그러하다. 
곤란한 일이 생기면 누가 어떻게든 해 주겠지 하는, 근거 없는 기대감에 사로잡힌 젊은이들. 어른이 된 그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도움의 손길을 뻗어 주는 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에 초조해 하면서도 스스로 일어설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이렇게 된 바에야 인간보다 훨씬 강한 자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유치한 소원으로 도망간다. p.116

혼은 과연 영원히 살 수 있는가 따위의 심오한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 교의의 옳고 그름을 놓고 성가신 논쟁을 벌일 필요도 없다. 한 종교단체의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주시하면, 그 사기성이 곧바로 드러난다. p.119

영험하다는 장소를 기웃거려 봐야, 또 그곳에서 머물며 장시간 명상에 잠겨 봐야, 갑자기 정신력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사그라지던 생기가 되살아나는 것도, 무거운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자신의 생활 자체를 재점검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몇 시간이나 자는지, 어떤 것을 먹고 사는지, 의식은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 그런 자잘한 것들에 개선할 점은 없는지를 일일이 파악하고, 어떤 부분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지를 알아내서 고쳐 나가야 한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다. p.128

남자의 정욕은 욕망 중에서 겨우 한 부분에 불과하다. 젊음이 넘쳐 나는 청춘 시절에는 그것이 전부인 한때가 있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쳐 어엿한 어른이 된 남자의 두뇌와 근육은 대부분 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일과 몸을 써서 처자식을 지키는 일에 무게를 두도록 만들어져 있다. 한마디로 남자는 일을 무엇보다 우선시한다. 늘 가족 전체를 배려하고, 주변을 경계하면서 닥쳐오는 이런저런 위험에 대처하고, 그런 일들에 몰두함으로써 생의 보람과 충만감, 쾌락 등을 느끼는 체질인 것이다. p.164

나는 칠십 가까이 살면서 절체절명, 고립무원, 사면초가 등의 궁지에야말로 명실상부한 삶의 핵심이 숨겨져 있음을 느꼈다.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과정에야말로 진정한 삶의 감동이 있다고 확신한다.
한 번 그 맛을 알고 나면 이성으로 자신을 계몽하면서 나아간다. 갖은 고난과 역경을 굳이 배척하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상황에 단호하게 대항하는 것에 삶의 참된 가치가 있음을 깨닫고 '자기 의존'이야말로 궁극의 목적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p.201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패륜적인 냄새에 뒷목이 서늘해지는 책이다. 겐지는 소설가가 된 후 평생을 시골에서 수도승처럼 산 남자로, 그에게서 느껴지는 거칠고 날카로운 문체는 도저히 70대 노인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솔직하고 강인하다. 

어제는 누군가로부터 망상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이야기는 이전에도 다른 이로부터 들은 바가 있어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처음 나에게 망상가라 욕을 했던 이는 해당 사건에 대한 나의 질문에 답변하는 대신, 나를 차단시키고 자신의 모든 글을 지웠다. 그리고, 오늘 비슷한 일을 또 겪었다.

비겁한 사람이든, 무례한 사람이든 성숙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최대한 스스로에게 정직한 사람이고자 한다. 아마도 '무례한 망상가' 정도면 꽤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기만적인 세상에서 예의바르게 살기가 참으로 어려운 날이다. 겐지의 삶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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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4/05/11 21:2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5/13 00:3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5/12 02:12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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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13 00: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임윤 2014/05/12 08:07 #

    -ㅁ-) 헉 뭐야! 내가 갖고 있는 생각하고 매우 유사해!
    정치학의 비판이론에서 주로 지적하는 주제들이네요
  • 명품추리닝 2014/05/13 00:45 #

    겐지는 대학도 안 나왔는데, 정치사회적으로 도출하는 결론을 보면 세계의 석학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서 신기해요.
  • 꼬질꼬질한 황제펭귄 2014/05/21 09:30 #

    연애는 성욕을 포장한 것일 뿐이다.... 공감되네요.
  • 명품추리닝 2014/05/23 23:26 #

    그래도 그 포장지가 꽤나 다채롭지 않나요? ㅎㅎㅎ
  • 2014/06/01 13:45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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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01 21: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몽고메리 2018/02/09 01:43 #

    요즘 저의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 책의 목차에서 깊은 울림이 오네요... ㅠㅠ

  • 명품추리닝 2018/02/09 17:11 #

    목차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지요?
    저에게도 여운이 깊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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