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by 명품추리닝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엄기호 지음 / 따비
나의 점수 : ★★★★★



사람은 기대어 사는 존재다. 기댈 사람이 없는 사람과 자신에게 기대는 사람 하나 없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하는 모든 창작과 노동은 '기대어 하는' 활동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노동으로 서로 엮여 있으며, 노동으로 서로에게 덕을 베풀고 은혜를 입는 존재라는 것이 곧 이 책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다. p.13

사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너 하고 싶은 걸 해. 나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폭력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득도하기 전까지는, 자신보다 남이 자기에 대해 더 잘 아는 법이다. 물론 이 말이 "너는 아직 너를 몰라. 내가 너를 더 잘 알아" 하면서 강요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나이에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거울, 타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가르치는 사람,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34

우리가 어떤 경험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이 재미있거나 혹은 교훈적이었을 때다. 수업이 재미있기 위해서는 학생들 스스로가 뭔가를 하고 그전에는 알지 못하던 '경이로운 것'을 발견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인상 깊게 기억에 남게 된다. 그전까지는 없던 깨달음이 있어야 기억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업이라는 시간은 학생들에게 재미있지도 않았고 교훈적인 것을 주지도 않았다. '공부하는 애들'에게는 빨리빨리 정보를 습득하고 소비하는 공간에 불과하고 '널브러진 애들'에게는 그조차 의미가 없다. 수업 시간에 교사나 다른 학생들과 같이 재미있는 뭔가를 해본 기억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한 공간에 모여 있지만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속이 부재한 시공간이다. p.69

학교 폭력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학생들이 흔히 하는 변명이 장난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역으로 그들이 괴롭힘을 당한 사람의 입장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사태의 심각성은 오로지 그 사람의 입장에 서 있을 때에만 이해가 된다. 문제는 이 사회적 약자들은 역지사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감정이입을 할 이유가 없다. 이런 현상을 나는 공감/동감 능력의 상실로서의 감정적 단절이라고 부른다. 교실은, 모르는 존재를 만나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면서 타자가 되는 경험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름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단절의 공간이 되고 있다.
장난이라는 말에는 타자가 상처받을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없다. 고통받는 타자의 얼굴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정당할 수가 없게 된다. 고통받는 타자의 얼굴은 '나'의 정당성과 질서에 충격을 가하고 균열을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난이라는 말은 고통받는 타자에게서 얼굴을 지워버리는 폭력이다. 장난이라는 말로 타자의 고통은 '내 질서'에 충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유희'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역전되는 것이다. 타자를 괴롭히는 것이 그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그의 얼굴에서 고통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p.83

교사들의 무력감은 학생들이 겪고 있는 일이 교사 자신의 경험 세계와 동떨어진 것일수록 심해진다. 완전히 낯선 존재에게서 느끼는 무력감이다. 자신이 전혀 경험하거나 상상해본 적이 없는 일이어서, 이야기를 듣는다 하더라도 그 어떤 조언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기가 생각해보지 못한 비참함 때문에 교사가 충격을 받아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고, 이것이 무기력을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그 교사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은 동료 교사들뿐이다. 이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함께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겪는 이런 2차 정신적 트라우마를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현실이기 때문에 그냥 외면해서는 안 되고 당장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외면함으로써 나중에 치러야 할 심리적 대가보다는 훨씬 작은" 고통임을 이해하고, 이것이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집단적으로 이런 트라우마를 받은 거니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치유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이 학생들과의 관계와 상담에서 받은 현실에 대한 고통과 상처를 서로에게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라는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p.185

이처럼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 위해 자기를 검열하고 단속하는 것은 서로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믿었던 사람이 언제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늘 가지고 살아간다. 바우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세 가지 수준에서의 신뢰가 다 붕괴하였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두 번째는 타자에 대한 신뢰, 세 번째는 제도에 대한 신뢰다(바우만, 2009a" 262).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자기 자신조차 믿지 않으며, 자신이 속한 제도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만 자기 주변에 배치하려고 하며 모르는 세상과의 접촉을 될 수 있는 한 끊으려고 한다. 제도와 타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불신할 때, 안전을 위해 자기가 자심을 감시하고 검열하는 자기 단속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개인들은 침묵함으로써 스스로를 세계와 단절하여 고립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취향만 남게 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감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강도가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집착한다. 취향이 같거나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것이다. 이른바 '사교'만 남게 되었다. 이 시대가 가진 취향과 사교에 대한 강박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세넷, 1982: 32). p.292~293

따라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는 "선생님, 하나도 모르겠는데요?"라는 말을 환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하나도 모르겠다'는 말은 교사를 엿 먹이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초대하는 말이다. 가르치는 이의 정체성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내가 누구를 만나는가에 달려 있다. 내 말을 알아듣는 학생들만 만날 때 나는 절대 가르치는 이가 될 수 없다. 나는 그저 말하는 이일 뿐이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이 책에서 교육이란 타자성과의 만남이라고 누누이 강조한 이유이다.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 존재, 그가 타자가 아니라면 누가 타자란 말인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하는 학생이 바로 가르치는 사람이 대면하고 만나야 하는 타자이다. 이 질문을 환영하는가 아닌가는, 가르치는 이로서 내가 타자성을 대면하려고 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중대한 시험이 된다. 이 타자성을 대면하고 만날 때 비로소 나는 '가르치는 이'가 될 수 있다. p.300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는 평범한 교사들의 상처와 아픔을 담담한 태도로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나만의 상처가 아닌 우리의 상처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하고, 서로를 지지해줄 수 있다. 치유는 스스로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곪은 상처에 메스를 들이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궁금하다. 지금 나의 고름은 얼마나 흘러나왔을까?   

덧글

  • 달팽이 2014/02/05 21:33 #

    저는 명품추리닝께
    기댈게요^^

    이 책도 주문해서 봤어요.

    책을 보는 눈이 탁월하셔요. ^^
  • 명품추리닝 2014/02/05 23:52 #

    저도 제 얼마 안 되는 덧글 손님인 달팽이 님께 기댈 수밖에 없네요.^^

    감사해요, 정말 :)
  • 달팽이 2014/02/05 21:56 #

    아, 제가 읽은 책 중 명품추리닝님이랑 겹치는 거에 ♥달게요.^^
    아마 놀라실겁니다!

    요즘 저는 홍대쪽에 있는 수유너머N에서 이진경교수님의 노마디즘 강의듣고 세미나하고, 곧 에세이발표를 위한 공부하고 있어요.


    좋은 저녁되세요!
  • 명품추리닝 2014/02/05 23:53 #

    오, 수유너머가 이제 N으로 바뀌었나요?

    역시 배움에는 끝이 없는가봐요. 저도 좀 더 나이가 들어서 계속 발전할 수 있었음 좋겠어요.
  • 달팽이 2014/02/06 08:26 #

    수유너머N, 수유너머R , 공간수유
    비슷한 단체지만 공간이 다 달라요^^
    N은 노마디즘약자예요.
    노마디즘은 저한테 아주 생소한 개념인데..
    문학.철학.역사.음악.미술을 아우르는 "방목주의"라네요 ^^;;
    엄청 헤매고 엄청 깨지고 있어요

    틀을 깨려고 갔다가 ㅠㅠ
  • 명품추리닝 2014/02/06 14:45 #

    이럴수가... 저는 N이 New인 줄 알았어요;;

    수유너머R이 Romance라면, 저도 빨리 등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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