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라틴어 수업 by 명품추리닝

라틴어 수업 - 8점
한동일 지음/흐름출판


삶의 긴 여정 중의 한 부분인 학문의 지난한 과정은 어쩌면 칭찬받고 싶은, 젠체하고 싶은 그 유치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 
그러니 만일 여러분이 뭔가에 관심이 생기고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내가 왜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왜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는지 한번 들여다보세요. 그 다음 내 안의 유치함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비난하거나 부끄러워하기보다 그것이 앞으로 무엇이 될까, 끝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치고 힘든 과정에서 오히려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그러니 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의 그 마음이 그저그런 유치함이 아니라 '위대한 유치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p.26

지금도 저는 여전히 누군가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하고 서로를 알아가고, 그러면서 친분을 쌓는 일에 서투릅니다. 이 나이쯤 되면 누구를 만나든 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제게는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 이 부분이 저의 오랜 데펙투스defectus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p.62

어쩌면 삶이란 자기 자신의 자아실현만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준비 속에서 좀 더 완성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서 자아실현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요? '도우트 데스Do ut des.' 이 짧은 말 속에 담긴 많은 의미들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p.122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 p.130

오늘날 이 명문을 우리 일상과 접목하면 "인간이 원하고 목표하던 사회적 지위나 명망을 취한 뒤 느끼는 감정은 만족이 아니라 우울함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허무함을 느낍니다. p.136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치열하게 달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부든 사랑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럴 수 있는 뭔가를 만나고 그만큼 노력을 한 다음에 찾아오는 이 우울함을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나면 아마도 또 다른 세계가 여러분 눈앞에 펼쳐질 겁니다. p.137

Vulnerant omnes, ultima necat.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 p.254
직장에서 짬짬이 읽을 요량으로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을 빌렸다. 마침 지적인 아우라가 넘치는 직장동료가 내 손에 들린 <라틴어 수업>을 보고 [저도 이 책 읽었어요, 참 좋죠?]라고 내 독서취향을 칭찬해주어서, 나는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젠체하고 싶은 내 안의 유치함'(26)을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독서가 가져다주는 장점을 깨닫는 요즘이다.

제목만 들어도 지루한 라틴어를 '유럽의 역사에서부터 철학, 신학, 지리, 사회, 어학(296)'을 통합하여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저자의 역량은 오랜 공부와 사색에서 나온 것일 게다. 그가 스스로의 단점이라 여기는 낮은 사회성도 학문을 업으로 삼는 이에게는 좋은 덕목이 되었을 터. 불완전한 조건에서 자아실현을 하고 있는 인물을 활자로라도 접하니 반갑고 존경스럽다. 나도 피아노가 없는 집에 10년째 살며 재즈를 배우고 있으니 조건은 불완전한데, 언제쯤 자아실현을 할지는 기약이 없다. 아무튼 꾸준히 연습해서 재즈피아노 잘 치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염색 안한 은발머리에 개량한복을 입고 히로미를 연주하는 할머니면 멋있겠다.     


15,000보 by 명품추리닝

6월의 어느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의 공연을 했고, 토요일 공연 때는 뜻하지 않게 꽃다발을 두 개나 받았다. 피곤하지만 즐거운 밤이었다. 이제 다음 날인 일요일은 이불과 한몸이 되어 늘어지게 자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일요일 오전의 달콤한 늦잠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생각해보니 두 달 전의 멍청한 내가 연주회 바로 다음 날 하이킹 스케줄을 잡아버렸던 것. 할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도시를 떠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휘적휘적 걸었다. 연주회 때와는 또 다른 피곤함과 즐거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사람이 느끼는 아름다움의 형태는 매우 다양한 것이었다. 

하이킹 때 먹을 간식으로 포도를 가져왔는데, 중간에 들른 미술관에 마침 포도 그림이 전시된 덕분에 재미있는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결국 피곤한 몸으로도 15,000보를 걸었다. 아마 칼로리도 적잖이 소모했을 것이다. 이불 밖을 나온 보람이 있는 일일 다이어트 코스였다. 

힘겨운 다이어트 코스가 끝났으니 힐링 코스가 필요한 법. 우리의 낮은 당신의 밤보다 아름답다...?   

올해 첫 빙수는 투썸 플레이스에서 만났다. 함께한 이들과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우며 그릇을 비웠다. 다음에는 엥겔지수를 더 높이자는 나의 의견이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by 명품추리닝

지난 주에는 정말 운좋게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지방공연으로 한번 더 만날 수 있었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관람할 기회가 주어진 것. 덕분에 티켓오픈 때부터 피말리는 티켓팅을 하여 다섯 개의 좌석을 확보하였고, 동료들과 시간대를 맞추다보니 이번에도 전동석 지킬과 마주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울엄마와는 지방공연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울엄마도 동지킬 엄청 좋아하는데. 

어쨌든 동지킬은 MR 공연도 무척 잘해주었다. 그 이전 몇 번의 지방 MR공연에서 감을 잡았는지 [This is the moment] 도입부 타이밍도 잘 잡았고, 내가 좋아하는 이 곡의 연속되는 최고음 G#도 우렁차고 깨끗하게 잘 불렀다. 특히, 도입부 가사 [여기 바로 오늘]의 '오늘'을 이전과 달리 대사처리 했는데, 조승우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단호한 느낌이 들어서 극과 잘 어울렸다. 하이드로 변한 후에 부르는 [Alive]도 야수 같은 이미지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표현, 1막에서부터 내 동료들에게 제대로 덕통사고를 일으켜주었다(함께 관람한 동료들이 모두 음악 전공자들이라 웬만한 가창력에는 눈 깜짝하지 않는다).

하이드의 대사처리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하이드의 발성이 대부분 베이스였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하이드의 저음이 많이 사라졌다. 대신 연극적인 톤을 좀 더 많이 넣은 것 같다. 나는 그냥 베이스 발성이 더 좋은데. 그래도 다행히 [Sympathy Tenderness Reprise2] 마지막 소절에서는 동하이드의 매력적인 저음이 많이 나와서 행복했다. 게다가 루시와 부르는 [Dangerous Game]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퇴폐적인 손길이 가득하지 않았나. 회전문 관객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은 장면이다. 이후 주말을 지나 출근을 해서도 동료들과 한참 뮤지컬 감상을 나눈 덕분에 유일하게 월요병이 느껴지지 않은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뮤지컬 후기를 검색하다 전동석의 10월 단독 콘서트 기사를 보았다. 엄마와 <지킬 앤 하이드>를 또 볼 수는 없지만 전동석 콘서트는 볼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가격이다. 나는 서울-지방 왕복차비까지 생각해야 하니까. 부담스러우면 엄마만 보여드려야지. 울엄마에게 공연 감상을 듣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연로하신 울엄마가 콘서트장에서 흥분한 여성관객들에게 깔리는 일이 없기를 기도해야겠다.   

  

<울엄마 언어> 
넘 비싸 = 비싸지만 보고 싶어

[재즈피아노] Choux a la creme by 명품추리닝

지난 겨울부터 우에하라 히로미의 Choux a la creme(슈크림 과자)를 연습하여 이제 겨우 암보할 정도가 되었다. 음악적인 디테일을 살려 연주하려면 좀 더 세부적인 부분연습을 해야겠지만, 이 비르투오조적인 대곡을 어찌어찌 완주한 것만으로 일단 자축 행사를 벌여야지. 연습과정이 토나올 정도로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리얼북 연습 때 히로미의 Lick을 모방하여 재즈 솔로에 사용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첫 촬영을 하고 스스로의 영상을 보며 터치의 정교함과 리듬의 정확성 등을 보완하는 연습을 했다. 일주일 후(2019.6.13) 재촬영을 했더니 이전보다는 조금 낫다. 아주 조금;; 

영화보다 감동적인 [로켓맨] 포토존 by 명품추리닝

월드타워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화려한 <로켓맨> 포토존에 시선이 멈췄다. 대부분의 전시용 악기가 그렇듯 이번에도 어디서 싸구려 피아노를 촬영용으로 가져다놨구나 생각했는데, 월드타워 포토존에 놓인 것은 3000만원대의 야마하 C5 모델로, 컨디션까지 최상인 그랜드 피아노였던 것이다. 게다가 이 최고급 피아노를 누구나 시연해 볼 수 있으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몇 분간 행복에 겨운 연주를 했다. 영화 <로켓맨>도 좋았지만, 포토존은 그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다.

[재즈피아노] Who can I turn to (Intro) by 명품추리닝


재즈 발라드를 공부하기 위해 오스카 피터슨의 Who can I turn to의 인트로 부분을 연습하고 있다. diminish scale이 어렵지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인트로 다음의 스윙 리듬이 멋있는데, 도저히 손댈 수 없는 테크닉이 기다리고 있어서 원곡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왜 재즈는 알면 알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영화] 기생충 (스포일러 주의) by 명품추리닝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선'을 넘는 하류계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봉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나 <옥자>에서와 같이 <기생충>에서도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다양한 오브제가 활용되고 있는데, 반지하방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변기 옆에서 와이파이를 잡는 남매의 모습은 익살맞으면서도 처량하다. 기택(송강호)의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서류를 위조하고, 비슷한 하류계급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교활한 방법으로 빼앗는다. 

박사장(이선균)의 가족들은 '선'을 넘지 않는 수더분하면서도 영리한 가정부 덕분에 쾌적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린다. 박사장 가족이 저택을 비울 때 가끔 가정부(이정은)의 숨겨둔 남편이 올라와 거실에서 티타임을 가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정부 부부는 철저하게 선을 지켜 그들의 이중생활을 들키지 않는다. 기택의 가족들이 저택에 일자리를 얻자마자 주인 없는 거실에서 너저분한 술판을 벌이는 장면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물론, 기택 역시 박사장에게 끝까지 선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몸속 깊은 곳까지 배어 있는 반지하의 냄새는 선을 넘겨 매번 박사장 가족의 불쾌감을 유발한다. 박사장의 찡그린 표정은 아마도 하류계층의 존재 자체에 대한 혐오를 나타내는 게 아닐까. 

결국 기택의 가족은 생존을 위해 칼을 든다. 그러나 처음 칼끝이 향하는 곳은 상류층 사람들이 아닌 같은 하류층 사람들이다. 부유한 이들로부터 나오는 찌꺼기를 받아먹기 위해 싸우는 두 가족의 모습은 얼마나 절박하고 필사적인가. 그렇게 비극적인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기택은 보이지 않는 기생충의 삶을 선택한다. 그의 희망으로 남은 것은 밤마다 저택에서 갸냘프게 깜박이는 작은 전구뿐이다.   

두 아저씨들과의 다툼 by 명품추리닝

올해 처음으로 합창 연수를 들으며 능력있지만 고집 센 지휘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 이 지휘자 아저씨와 좀 다툼이 생겼다. 합창곡 중간에 $$$$이라는 원곡의 가사를 #######이라는 우리 단체의 이름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 의견 차이가 심했던 탓이다. 지휘자 님은 |♪♪♪♪(4분쉼표)♪♪| ♩라는 리듬을 주장하셨는데, 이 리듬은 4분음표가 많은 곡에서 해당 마디만 분박이 잦아져 음악적으로 어색하게 들렸다. 반면, 나와 부지휘자 님은 ♪♪| ♩ ♩ (4분쉼표)♪♪| ♩가 더 음악적이면서 가사를 잘 살리는 리듬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이 고집 센 지휘자 아저씨가 우리의 의견을 무시하고 끝까지 자신이 주장한 리듬으로 노래하길 강요한 것. 음악이론적으로도 나와 부지휘자의 리듬이 더 적절하다고 설명할 수 있었지만, 수십 명의 단원들 앞에서 환갑의 지휘자 님을 욕보일 순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제 그 부자연스러운 리듬으로 해당 가사를 부를 때마다 나 혼자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두 번째로 다툼이 있었던 이는 현재 월세를 살고 있는 윗집의 임대인 아저씨인데, 은행에서 정년퇴직을 했단다. 그런데, 매월 700만원 이상의 월세수입을 얻는 사람치고는 첫인상이 너무 신경질적이고 여유가 없어보여서 놀랐다. 내가 온수가 제대로 안 나오는 보일러 수리를 요구할 때부터 화가 난 듯 목청을 높이며 [이렇게 까다로운 세입자는 처음 본다]며 최악의 상황에서야 기술자를 불러주었는데, 이 패턴은 곰팡이로 가득찬 에어컨 청소를 요구할 때도 똑같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면, 제가 수리비를 부담하는 대신 방을 일찍 빼서 나가겠습니다]라는 대답에 순순히 내 요구가 관철되는 것을 보니, 내가 그의 표현처럼 까다로운 세입자는 아닌 듯했다. 어쨌든 이 임대인의 성난 표정과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분명 세입자들의 정당한 수리 요구를 거절하는 효과적인 무기로 쓰일 터였다. 그러니 1년을 어서 채우고 더 나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수밖에.

일반적으로 다툼이 생기면 그 상대에 대한 호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자의 지휘자 아저씨에게는 여전히 호감이 간다. 나중에 합창 발표회가 끝나면, 함께 술을 마시며 그 리듬에 대해 2차로 다퉈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긴다. 스타일이 서로 다를 뿐, 음악에 대한 열정이나 고집은 비슷하기 때문일게다. 그렇지만 후자의 아저씨와는 어떤 상황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다. 단순히 생활고에 찌들어서 어두워진 표정과,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어두워진 표정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이 임대인을 통해 실감했다. 잘 늙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요즘이다.    

[전시] KENNY SCHARF SUPER POP UNIVERSE(2019.02) by 명품추리닝

스크롤 주의(30장)

서울식물원(2019.02.) by 명품추리닝

지난 겨울에 엄마와 임시개장된 강서구 서울식물원에 다녀왔다. 지금은 야외공원까지 조성되어 정식 개장, 입장료 5천원을 받는단다. 얼마만에 들춰보는 겨울의 추억인지, 드디어 내가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는구나 싶다. 

습하면서도 맑은 기운이 느껴졌던 여름온실이 기억에 남는다. 지구온난화는 어쩌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만 걱정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 넓고 푸른 잎사귀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더더욱 크고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엄마와 만보 이상을 걷고 동네 맛집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다가오는 6월 연휴에도 엄마와 즐거운 추억을 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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