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로 보는 2018 소확행 by 명품추리닝

작년 말, 2018년 다이어리를 구입하자마자 이벤트 당첨 리스트부터 만들고 부지런한 농부가 씨를 뿌리듯 응모를 하기 시작했다. 좀 더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면 다양한 경품을 획득했겠으나, 서울에서 1~2달 문화생활하며 즐겁게 놀 수 있을 정도로만 가볍게 발을 담갔다. 경품에만 목숨을 걸면 정신이 피폐해지니 모든 것은 적당히 하기로 한다. 

2018년 9월 15일 기준으로 당첨된 경품은 총 36개. 다이어리 한 페이지가 모자라 뒷장에 같은 양식을 하나 더 만들었다. 내 인생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만난 것이 올해의 가장 큰 기쁨이다. 이번 추석에도 서울에 가면 2~3개쯤 공연전시를 관람할 수 있을 게다. 내가 받은 경품의 최대 수혜자인 울엄마는 벌써 내 이벤트 당첨 리스트를 궁금해하신다. 

문화생활을 한 후에는 티켓을 보관했다가 다이어리에 가지런히 정리해둔다. 우울할 때 펼쳐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소중한 추억들. 

4월부터 시작한 불렛저널도 듬성듬성 공백이 많지만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여름 동안은 노느라 바빠서 아예 포기한 것들이 많지만, 결국 밥벌이를 재개하면 평소의 루틴을 되찾을 수밖에 없다. 108배와 스트레칭을 한동안 쉬었더니 족저근막염이 재발했다가 지금은 다시 나은 상태. 그래서 9월부터는 '영양제'란을 추가,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이든디자인의 달과노트 다이어리는 먼슬리 페이지 내지가 150g으로 두꺼워서 꾸미기가 좋다. 뒷비침도 없는데다 필기감도 좋아서 내년에도 같은 제품을 선택하게 될듯. 별것 없는 일상이라도 예쁘게 기록하면 기분좋은 추억이 된다. 남은 2018년의 일상도 꾸준히 기록,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해야겠다.  

재즈 감상과 우쿨렐레 연주 by 명품추리닝

평일저녁, 퇴근 후 시내로 나가 단돈 10,000원에 재즈 콘서트를 감상했다. 기타, 피아노, 베이스, 드럼 주자들의 실력이 고르게 좋았다. 예전에 내 연습을 도와준 베이스 주자가 '재즈는 대화'라고 말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깊게 다가온다. 그에 비하면 내 연주는 여전히 자폐아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언제 대화할 연주자를 구한단 말인가, 이 동네에서.  

사실 재즈보다 더 기억에 남았던 건 친구가 사준 회전초밥 20접시. 둘이 20접시라니, 실화인가, 하고 다시 세어보니 정말 그랬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것은 내 위장이다.   

주말에 우쿨렐레 버스킹 연주를 한 후에 주최측으로부터 받은 기념품. 일반인에 비하면 일취월장한 실력 덕분에 올해에는 우리 팀의 센터가 되어 열심히 연주했다. 생일을 맞은 미국인 동료 J와 그 친구 E도 와서 편의점 4캔 만원 맥주를 마시며 우리의 버스킹 연주를 들었다. 편의점 맥주라니, 이 외쿡인들, 한국에 너무 잘 적응하잖아! 어쨌든 이들이 정말 이 행사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즐거웠고, 다음 날 J에게 늦은 생일선물 겸 카카오톡 기프티콘을 보냈다. 목요일에 만나면 기념품도 하나 챙겨줘야지.

연주가 끝나고 팀원의 추천으로 뒤풀이에서 먹은 푸틴(Poutine). 감자튀김 위에 그레이비 소스, 치즈 등을 듬뿍 얹어서 먹는 캐나다 음식이란다. 아웃백 오지치즈후라이 이상의 칼로리를 자랑하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다음 주 중요한 업무만 없었다면 맥주를 무한대로 마시며 새벽까지 놀았을 텐데. 이럴 때 내가 자본주의의 노예임을 실감한다. 펍을 나오니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새로운 악기를 배우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있으니 어느새 여름이 다 지나갔다.  

[전시] 니키 드 생팔 by 명품추리닝

예술의 전당에서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을 보자마자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의 것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나 그녀는 스페인 여행을 하며 가우디의 구엘 공원에서 커다란 영감을 얻었단다. 순수한 환희와 기쁨이 넘치는 작품의 색감이 자유롭고 예뻤다. 그녀는 '사격회화(캔버스 앞에 물감주머니를 매달아 총으로 쏜 작품)'를 통해 어린 시절의 근친 성폭력 트라우마를 많이 극복한 듯했다.

전시회에 가기 전에 관련 정보를 팟캐스트 <방구석 미술관>을 통해 얻었다. 니키 드 생팔의 작품세계를 워마드를 비롯한 폭력적 페미니즘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니키가 '사격회화'로 자신의 고통을 피눈물 흘리듯이 드러낸 후에야 화려하고 풍만한 '즐거운 나나'를 만든 것처럼, 지금의 워마드 역시 성숙하지 못한 방식으로 고통을 드러내는 과정에 있다고. 이런 의견을 남자 팟캐스트 운영자에게 들으니 신선하면서도 반가웠다. 

니키는 조각작품에 쓰인 석유화학물질 때문에 서서히 병들어갔지만, 자신의 예술적 영감이 집대성된 <타로공원>을 만드는데 인생을 바쳤다. 그것도 누군가의 후원이 아닌 자신이 번 돈을 모두 투자해서. 이는 성공한 예술가가 사업가적 안목을 얻게 되는 일반적인 삶의 방식과 많이 다른 것이었다. 대부분의 자산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짓는 데 사용한 가우디처럼. 덕분에 <니키 드 생팔전>은 작가와 작품이 모두 아름다운 전시회로 기록되었다. 

[도서] 남아 있는 나날 by 명품추리닝

남아 있는 나날 - 8점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민음사

즉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p.57
매달 바뀌는 다이어리 먼슬리 공백을 채울 만한 그럴듯한 문장으로 때마침 읽기 시작한 <남아 있는 나날>의 주인공 스티븐스의 대사를 옮겨 적었다. 완독한 후에는 다른 문장을 옮겨 적었어야 했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그만큼 달링턴홀의 집사 스티븐스가 중반부까지 보여주는 유능하고 절제된 태도에 적잖은 감명을 받았나보다. 뼛속까지 게으름에 물든 나로서는 절대 갖출 수 없는 덕목이었으므로.
"우리가 히틀러와 맞서 싸운 이유도 결국에는 그겁니다. 만약 모든 게 히틀러의 뜻대로 되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노예 신세밖에 더 되었겠습니까? 소수의 지배자와 수억 수십만의 노예들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을 겁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겠지만, 노예 상태에서는 결코 품위를 갖출 수 없습니다." p.230
해리 스미스라는 인물이 들려주는 품위에 대한 또 다른 견해는 아마도 가즈오 이시구로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일 게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스티븐스가 보인 반응이었다. 노년에 이른 그가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고 고백한 것. (비록 잘못된 것일지라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뼈저린 후회보다는 은근한 합리화가 대부분의 인간에게 훨씬 편하고 자연스러운 방어기제가 아니던가. 반성에도 용기가 필요함을 새삼 깨우쳐주는 소설이었다.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p.299

2018 상반기 다이어리 꾸미기반 종강파티 2차 by 명품추리닝

지난 7월에 또 다른 2018년 다꾸반 종강파티가 있었다. 기본적인 다이어리 꾸미기 노하우만 전수해주면 회원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실현하고야 만다. 볼 때마다 놀랍고 뿌듯한 광경이다. 예산만 좀 더 지원되면 좋으련만. 얄짤없이 1차 종강파티로 예산이 바닥난 후 2차 파티는 내 지갑을 열어 진행했다. 그래도 우수회원들의 아름다운 결과물을 보면 별로 아깝지 않다. 달콤한 빙수는 한여름의 폭염에도 우리에게 환한 미소를 가져다 주었다. 하반기 종강파티에는 또 뭘 먹을지 고민해봐야겠다.    

[재즈피아노] Don't know why by 명품추리닝


감미로운 멜로디로 오랜 사랑을 받는 Norah Jones의 <Don't know why>는 펑키한 리듬으로 연주해도 매력적이다. 재즈피아노 선생님이 그려주신 엉성한 코드악보를 보고 더듬더듬 연주하는 것도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다. 완성된 악보가 아니라 언제든 더 좋은 화성과 리듬으로 변주해갈 수 있어 도전정신이 자극되기도. 연습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자.

가사 검색을 하다가 네이버 carrot님의 블로그에서 <Don't know why>의 의역된 내용을 보고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는 다르게 가사 전반에 후회와 공허가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노라 존스가 꽤 어린 나이에 히트시킨 곡이었는데, 어떻게 이토록 서정적인 감성을 잘 표현했을까 싶다. 노래에 묻어난 찬란한 슬픔이 인상적이다.    
   


엄마와의 여름 외식 by 명품추리닝

대학로에서 연극 <Ten: 열흘 간의 비밀>을 관람한 후 먹은 정돈 돈가스의 등심, 안심, 새우튀김. 30분 웨이팅의 보람이 있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니키 드 생팔>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자 뜬금없이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럴 땐 비지찌개와 해물파전, 막걸리를 시켜야 한다. 

버터가 잔뜩 들어간 빵이 먹고 싶어서 들어간 롤링핀. 비싸지만 맛있다. 

엄마와 <신과 함께2>를 관람하고 먹은 자장면과 꿔바로우. 느끼했는지 다음 날은 <어느 가족>을 보고 추어탕(사진 없음)을 먹었다.   

연극 <라이어 1탄>은 두 번 봐도 배꼽을 잡고 웃게 된다. 관람 전 배를 채우기 위해 주문한 피맥. 엄마와 기분좋게 건배를 했다. 하지만 가장 맛있었던 건 단호박 스프. 아아... 사진으로 보니 정말 많이 먹었군. 이제 이번 주부터는 진짜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재즈피아노] Morning Dance 연습 (Melodion, Piano) by 명품추리닝


멜로디언: 재즈 선생님
피아노: 명품추리닝
그림: 니키 드 생팔

- 선생님, 저 이번 여름에도 서울에 와요. 재즈피아노 배울게요. 목요일 시간 되시나요?
- 이런, 어쩌죠. 이번에 방학이라 갑자기 학생들이 한꺼번에 등록해서 빈 타임이 없어요. ㅠㅜ

재즈피아노를 몇 년 배우다보면 취미생일수록 실력있는 선생님을 만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불경기라도 실력있는 선생님에겐 학생들이 계속 몰린다는 것도. 맘에 드는 재즈피아노 선생님과 이별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급히 새로운 선생님을 물색했다. 하지만, 강사 프로필이 마음에 들면 레슨비가 너무 비싼데다 레슨 장소도 멀어서 좀처럼 새로운 선생님을 만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전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 재즈피아노 샘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ㅠ 혹시 저 가르쳐주실 다른 선생님이라도 소개해주실 수 있으세요?
- 오, 마침 제 학생 한 명이 일본 유학간대서 한 타임 비어요!

그래서 운좋게 다시 이전 선생님께 계속 재즈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3주, 단 4회 레슨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가야 한다. 에어컨 없는 본가 거실에서 선풍기와 쿨스카프로 무장을 한 채 새 야마하 피아노와 씨름을 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도 그나마 피아노 소리라도 맑고 예뻐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덕분에 선생님께 '입시생보다 더 숙제를 잘 해온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 레슨 후 연습실에서 저녁까지 연습을 하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모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이제야 지독한 폭염이 끝나가는 듯했다. 내일 연습은 좀 더 수월해질 것 같아 반가웠다.  

[전시] 위대한 낙서 by 명품추리닝

<위대한 낙서>라니, 그래피티 전시회의 제목이 참 좋다. 역사적, 사회적 배경으로 깊이 들어가면 한없이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르겠으나,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특히 귀여운 것은 고양이 그림. 포스터를 사서 방에 붙여놔도 예쁠 것 같았지만, 생각만 하고 구입하진 않았다. 그래도 대신 친구가 사준 미니엽서를 다이어리에 붙인 덕분에 가성비 좋은 소확행을 이루었다.    

전시회보다 더 즐거웠던 저녁식사시간. 생일축하 겸 친구가 사준 거라 더 맛있었는지도. 그렇게 올해 다이어리에도 친구의 그림이 예쁘게 자리잡았다. 열대야로 지쳐가는 나날,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서 오는 거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 저녁이었다. 

호텔 바캉스 by 명품추리닝

8월초, 한반도의 무더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 2박 3일간의 호텔 바캉스를 다녀왔다. 서울에 살며 서울의 호텔방을 잡는 이 어이없는 돈지랄도 역사상 최악의 폭염에 에어컨 없이 살고 있는 본가에선 나름 합리적인 휴가 방법이 된 것. 원래 엄마와만 묵기 위해 트윈룸을 예약했으나, 갑자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동안 수고하신 이모가 합류하게 되어 방을 하나 더 잡았다. 예상 외의 지출에 월급통장이 불안해질 무렵, 천사처럼 나타난 울 삼촌이 지원금 50만원을 보내주셔서 숨통이 트였다. 역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어야 멋있다. 체크인을 하고 오후시간을 침대에서 빈둥거리다 한남동으로 나가 생갈비 김치찌개를 먹었다. 1인용 압력솥으로 막 지어진 밥과 묵은지가 잘 어울려 누룽지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첫날 호텔 침대에서 낮잠부터 청한 이유는 저녁에 맑은 정신으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관람하기 위함이었다. 배우 전동석은 '뮤지컬 계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실력과 외모를 가졌고, 박민성 역시 선량한 앙리부터 한을 품은 괴물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서사의 개연성이나 과장된 무대가 조금 아쉬웠으나 캐릭터의 매력 하나만으로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불러일으킨 화려한 뮤지컬. 덕분에 다음 날에도 우리 세 명은 오전 시간 내내 <프랑켄슈타인> 프레스콜 영상을 찾아보며 그 여운을 이어갔다. 

호텔 조식을 먹고 사우나를 즐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일본 체인호텔의 정갈한 조식은 엄마와 이모의 취향에도 부합한 모양이었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주고 설거지까지 해주는 밥이다. 거하게 먹은 조식 덕분에 점심은 서브웨이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때웠다.  

둘째 날 오후에는 예약해 둔 전통주 갤러리에서 전통주 시음을 했다. 두 종류의 막걸리와 40도짜리 증류식 소주, 복숭아 와인을 한 잔씩 마시니 기분좋은 취기가 올라왔다. 

전통주 갤러리 위층에는 '이음'이라는 전통 카페가 있어서 전통식품과 전통주를 구경하며 쉴 수 있다. 테이블간 간격이 상당히 넓어 쾌적한 느낌을 주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엄마와 이모가 쉬시는 동안, 나는 가까운 피아노 연습실에서 재즈피아노 숙제를 했다. 호텔 바캉스 바로 전날 레슨을 받았으니 휴가 중에도 연습을 해야 배운 것을 계속 기억할 수 있다. 연습실 영창피아노의 타건감이나 음색이 썩 좋지는 않았으나 에어컨만큼은 빵빵하여 숙제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저녁에는 오라버니가 호텔 주변으로 와 스시를 사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싸면 맛있다. 오도로, 능성어, 참돔, 청어, 단새우... 공부하는 마음으로 메모까지 해가며 진지하게 접시를 비웠으나 며칠이 지난 지금은 머릿속에서 모두 '맛있는 초밥'으로 간단하게 정리되었다. 아무래도 나는 핵심요약정리에 대단히 뛰어난 두뇌를 가진 것 같다.   

마지막 날 조식과 사우나를 즐기고 호텔 주변의 볼거리를 찾아 떠나려고 했으나, 연일 계속되는 기록적인 폭염에 다시 침대와 한몸이 되어 에어컨을 맞았다.  

점심으로 이모가 아구찜을 드시고 싶으시다기에 체크아웃 후 엄마가 추천한 맛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호텔 바캉스의 마지막 식사였다. 지갑이 꽤 가벼워졌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이 가벼워서 기분이 좋았다. 내년 본가 이사 전까지는 엄마가 계속 에어컨 없이 생활하실 텐데, 다음 여름에도 한번 더 호텔 바캉스를 가야 하나 고민이다. 뭐, 내년이 되면 또 무슨 수가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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